혼밥 중 옆 테이블 대화가
전부 들려버렸다
원하지 않았지만, 나는 오늘 TMI를 수신했다
혼밥의 의외의 부작용이 있다. 아무것도 안 하면 귀가 열린다는 것. 대화 상대가 없으니 듣는 채널이 자동으로 주변을 향한다. 원치 않아도 옆 테이블 대화가 들어온다. 이어폰이 없던 날, 나는 30분 동안 완전한 타인의 서사를 수신했다.
옆자리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커플이었다. 처음엔 그냥 밥 먹는 소리만 났다. 그러다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, 나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.
- 12:14 남자가 전 직장 상사 흉을 보기 시작한다. 나는 국물을 마신다.
- 12:17 여자가 "그 사람 원래 그래"라고 맞장구를 친다. 나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가 멈춘다.
- 12:21 남자가 이직 고민을 꺼낸다.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커리어 방향성을 생각하기 시작한다.
- 12:25 여자가 시댁 이야기를 꺼낸다.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집중한다. (무의식적으로)
- 12:29 남자가 "근데 우리 엄마도 그런 면이 있잖아"라고 한다. 관계가 복잡해진다.
- 12:31 여자의 표정이 굳는다. 나는 괜히 밥을 빨리 먹기 시작한다. 이건 내 일이 아니다.
- 12:33 두 사람이 조용해진다. 나도 조용히 계산하고 나온다. 결말은 모른다.
식당을 나오면서 나는 잠깐 그 커플 걱정을 했다. 어이없지만 사실이다. 시댁 문제가 좀 복잡해 보였는데. 잘 해결됐을까.
혼밥의 진짜 문제는 외로움이 아니다. 타인의 삶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된다는 것. 이어폰은 귀를 막는 게 아니라, 나를 지키는 장치였다. 다음부턴 꼭 챙긴다.
근데 솔직히 조금은 재미있었다.

